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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0-23 11:09
[Science &] 몸속 세포의 `운명` 바꿔 파킨슨·알츠하이머 정복하라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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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줄기세포 혁명 온다…배아→성체→역분화 거쳐 이젠 `직접 교차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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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마지막 할 일이 정해졌다. 박주태를 죽이는 것이다. 그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기 전에." 오는 9월 영화로 개봉하는 `살인자의 기억법`. 원작인 김영하 작가의 동명 소설에서 은퇴한 연쇄살인범 병수는 알츠하이머(치매를 일으키는 퇴행성 뇌질환)와 힘겨운 사투를 벌이며 딸을 구하기 위한 마지막 살인을 계획한다. 소설이나 영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알츠하이머가 유독 극적인 효과를 자아내는 까닭은 그 누구도 `신경의 퇴행`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극악무도한 살인범도, 사랑에 빠진 연인도, 부유한 재벌도 사라져가는 기억 앞에서는 모두 무력하다. 한 번 고장나거나 수명을 다한 뇌속 신경세포를 되살릴 길은 없다. 알츠하이머, 파킨슨이 여전히 불치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이유다. 인간의 뇌에는 신경세포 외에도 수천억에서 1조개에 달하는 세포가 존재한다. 신경세포는 전체 뇌세포 중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세포 하나하나가 각자의 역할을 운명처럼 타고나기 때문에 신경세포가 늙거나 죽으면 그 빈자리를 주변 세포가 메울 수 없다. 성상교세포, 희소돌기아교세포 등 다른 세포들은 뇌가 끝까지 작동할 수 있도록 곁에서 영양소를 공급하고, 이물질을 치워줄 뿐 인지능력을 좌우하는 신경세포 고유의 기능을 대체하지 못한다. 그런데 만약 세포의 운명을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주위를 맴도는 숱한 보조 세포들로 미량의 신경세포를 대신할 수 있다면 기억의 증발을 막을 수 있을까. ◆ 불치병 환자의 희망, 줄기세포

손상된 세포를 되살려 불치병을 치료하는 재생의학의 선두 주자로는 줄기세포 기술이 꼽힌다. 환자들에게 긴 세월 희망과 좌절을 안겨준 줄기세포 기술을 요약하면 `리프로그래밍(re-programming)`이다. 한마디로 판을 뒤엎는 것이다. 유전자에 촘촘하게 `프로그램(program)`화된 몸속 230종 세포의 운명을 다시 짜 질병을 정복하자는 취지다. 수정란에서 유래한 배아줄기세포, 제대혈이나 성인의 골수 등에서 나온 성체줄기세포는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1·2세대 줄기세포다. 국내에서는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해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노력이 한창이지만 여전히 기술적 장벽은 높다. 어떤 세포로든 분화할 수 있는 배아줄기세포는 배아를 파괴하는 윤리적 문제가 있고, 윤리적 문제를 피해 간 성체줄기세포는 제한적인 분화 능력 때문에 치료할 수 있는 질병에 한계가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3세대 줄기세포가 바로 `역분화줄기세포(iPSCs)`다. 이미 분화된 세포의 시간을 `되감기`하는 역분화 기술을 사용한다. 피부세포, 간세포, 심장세포로 운명이 정해진 줄기세포를 다시 배아줄기세포 같은 만능형 줄기세포로 되돌리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유도(induced) 만능 줄기세포`로도 불린다. 배아줄기세포처럼 어떤 세포로든 분화할 수 있지만 피부 등 체세포를 이용하기 때문에 배아줄기세포와 같은 윤리적인 부담도 없다. 장점만 취한 셈이다. 이에 2006년 역분화 기술을 처음 발표하고 이듬해 11월 인간의 유도 만능줄기세포를 제작한 일본의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는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거머쥐었다. 역분화줄기세포는 현재 줄기세포 연구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어떤 모습으로든 변신할 수 있다는 `만능성`이 장점인 동시에 치명적인 약점이 되고 있다. 종양처럼 무한대로 증식하는 특성 때문에 혹시라도 분화가 100% 완전하지 않은 상태로 몸속에 들어가면 암의 일종인 테라토마(기형종)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혹을 떼려다 되레 붙이는 격이다. 김정범 UNIST 한스쉘러줄기세포연구센터장은 "간 세포가 간에 있으면 정상 세포지만, 뇌에 넣었는데 뜻밖에 간 세포로 분화하면 암 덩어리가 되는 것과 같은 원리"라며 "특정 세포로 꽉꽉 눌러놨던 만능 줄기세포가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2015년 유도 만능세포로 만든 인공 망막을 시력을 잃은 황반변성 환자에게 이식하려다가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견돼 임상을 중단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줄기세포 안 거치는 `직접 교차분화`

이런 단점을 극복한 새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리프로그래밍 기술이 바로 `직접 교차분화`다. 어떤 세포로든 분화할 수 있는 만능 줄기세포 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이미 운명이 고정된 세포를 환자에게 필요한 세포로 바꾸는 것이다. 역분화와 재분화라는 복잡한 과정을 건너뛴 일종의 `지름길`이다. 심근경색으로 심장의 근육세포가 작동을 멈추면 주변 섬유아세포를 근육세포로 바꿔 심장을 다시 뛰게 하고, 인슐린을 생산하는 췌장의 베타세포가 고장나면 주변 세포를 베타세포로 바꿔 당뇨병을 치료하는 식이다. 분화되기 전 단계의 만능 세포를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테라토마를 만들어 암을 유발하는 위험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직접 교차분화 기술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미국 하버드대 더글러스 맬턴 교수가 생쥐의 외분비세포를 베타세포로 바꿔 치료에 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이후 전 세계적으로 많은 연구가 이뤄져 지난 3년간 눈, 간, 심장 등 거의 모든 세포를 직접 교차분화 방식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게 밝혀졌다고 한다. 하지만 직접 교차분화도 환자에게서 체세포를 채취해 세포를 전환한 뒤 다시 환자에게 이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몸에서 거부 반응 등이 일어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김장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줄기세포연구센터장은 "어차피 우리가 원하는 건 몸속에서 고장난 세포를 최대한 빨리 재생시키는 것인데 반드시 몸 밖에서 조작한 뒤 집어넣어야 할 필요는 없다"며 "최근에는 `생체 내(in vivo) 직접 교차분화`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지 그 생물학적 기전을 이해하려는 연구들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몸속에서 세포 운명을 바꾼다

최근 김종필 동국대 교수 연구팀은 몸속에서 세포의 운명을 전환하는 기술을 개발해 국제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몸속 세포에 전자기화된 금나노 입자를 처리하면 세포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주고 일반 피부세포를 도파민 신경세포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파킨슨병에 걸린 쥐에게 8주간 전자기화된 금속 나노입자의 자극을 가했더니 체내 세포가 효율적으로 변신해 증세가 좋아졌다는 이번 연구 결과는 세계적 권위의 국제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실렸다. 도파민 신경이 죽어나갔지만 새롭게 만들어진 신경세포가 죽은 세포의 빈자리를 메운 것. 나노입자를 매개로 두고 원하는 시간과 양만큼 에너지를 처리하면 세포의 운명을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또한 이번 연구는 생체 내에서 필요한 세포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기존 기술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차세대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환자 몸에 손조차 대지 않고 병을 낫게 할 방법을 엿본 것이다. 일반적인 세포 전환 비율이 기존에는 2~3% 수준이었지만 67%로 20배 이상 끌어올리며 유의미한 치료 효과를 입증했다. 김종필 교수는 "몸속에서 세포 전환을 유도하기 때문에 몸 밖에서 조작할 때보다 환자에게 주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할 수 있고, 이식 과정이 없어 주변 세포들과도 쉽게 어울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성공 사례가 하나둘 나오면서 `생체 내 세포 전환`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다음달 한국줄기세포학회를 방문하는 미국 샌디에이고 솔크연구소의 이스피수아 벨몬트 교수는 최근 이 분야에서 가장 주목 받는 연구자다. 그는 지난해 털이 다 빠진 늙은 쥐의 세포를 생체 내에서 전환해 젊은 쥐로 시간을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만능줄기세포를 거쳤을 때와 달리 쥐가 즉시 사망하거나 광범위한 종양이 발생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몸에 손을 대지 않고 저절로 질병을 치료하는 이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도 높다. 김정범 센터장은 "차세대 세포 치료 기술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자극을 줬을 때 의도한 타깃 세포의 운명만 바꾸는 게 아니라 다른 세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적중이 힘들다는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말했다.

줄기세포 상용화 `SF` 속 얘기? 신약 개발 활용엔 이미 `실화`
질병환자 세포 복제해 신약 테스트에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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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4년 미래의 도시, 우주정거장에 착륙하자 한 여성이 뼈가 부러진 아이를 품에 안고 목숨을 건 질주를 시작한다. 지구에서 온 불법 이민자를 체포하려는 로봇들을 따돌리고 황급히 창문을 부수고 주거지에 침입한다. 이윽고 발견한 첨단 의료기기 캡슐에 아이를 누이자 `다발성 복합 골절`이란 병명이 뜨면서 곧장 치료가 시작된다. 수술도 이식도 없이 순식간에 뼈가 아물고, 걷지 못하던 아이는 벌떡 일어선다.

맷 데이먼 주연 영화 `엘리시움`의 한 장면이다. 사람이 기계 속에 들어가면 질병이 몸속에서 자동으로 치료된다는 기적 같은 이야기다. 몸속에서 세포 운명을 바꾸는 `생체 내 직접 교차분화`와 같은 재생의학 기술이 발전한다면 이러한 상상이 허황되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최신 줄기세포 기술이 소개될 때마다 불치병 환자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이전의 배아·성체 줄기세포 기술이 그랬듯이 역분화줄기세포(iPSC)나 직접 교차분화 등 최신 기술이라고 해서 공상과학(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상상을 곧바로 현실로 옮기는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세포 치료제나 치료기기가 실제 환자에게 적용되려면 숱한 부작용을 정복하고 험난한 임상 및 허가 과정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 꿈같은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는다 해도 기초 연구자들의 도전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신약 개발 등 `질병과의 싸움`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일본 다케다약품공업, 스미토모제약 등은 이미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이용해 활발히 신약을 개발 중이다. 아직 세포 치료제 임상은 여러 문제들에 부딪히고 있지만, 다케다제약은 아예 iPSC를 최초로 만든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를 영입해 공동 연구팀을 구성하는 등 실험실에서의 성과를 회사 안으로 적극 끌어들이고 있다.

직접 교차분화도 이와 마찬가지로 `내 몸에 맞는 약`을 찾는 신약 개발에 활용될 수 있다. 실제 질병을 앓는 환자의 세포를 똑같이 만들어 테스트한 뒤 치료 효과를 보이는 약을 그 환자에게 그대로 쓰면 되기 때문이다.
세포 치료제를 환자에게 주입하려면 질병 세포를 정상 세포로 교정해주고 당국으로부터 암을 유발하는지 등 안전성을 꼼꼼히 확인받아야 한다. 그러나 질병 모델링을 위해 쓸 때는 질병 세포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김장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줄기세포연구센터장은 "가령 파킨슨병에 대해 연구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파킨슨병 환자의 신경세포를 이용하는 것인데, 실제 환자를 찾아내 뇌 신경세포를 분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그런 의미에서 직접 교차분화든 iPSC든 이런 기술은 연구 목적으로 쓸 수 있는 환자 세포를 얻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김정범 UNIST 한스쉘러줄기세포연구센터장도 "유전자 돌연변이를 갖고 있는 환자로부터 iPSC를 만들어 분화시키거나 직접 교차분화하면 수많은 질병 세포가 생겨난다"며 "이걸 곧바로 인간의 몸에 이식하면 문제가 생기지만, 질병 세포를 배양해 대량생산하면 신약 효능을 검토하는 유용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윤진 기자]